국내산행/무등산 40

2013-06-05[국내산행]광주 무등산(산수동→장원봉→꾀재→향로봉→바람재→토끼등→동화사샘터→중봉→서석대→증심사 약 16㎞)

지산삼거리→장원봉→깨재→리프트카 승강장→향로봉→바람재→너덜겅약수→동화사터샘→MBC,KBC방송 송신소→중봉→서석대→승천암→입석대→장불재→용추삼거라→중머리재→서인봉→새인봉삼거리→약사사→증심사주차장 오늘도 집에서 출발하여 지산사걸에서 산행들머리에 들어선다. 여기서 장원봉까지는 조금 가파른 길이다. 장원봉은 해발 389m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장원봉은 무등산 지봉(支俸)으로 속설에 향교가 옛날 봉우리 아래 있었고 고을 사람중 장원하는 자가 많아 이름이 생겼다고”,고 기록되어있다. 장원봉을 오르고 나면 길은 다시 내리막으로 꾀재까지 이어진다. 꾀재는 꾀가 많은 김덕령 장군이 자주 다녔다 하여 붙혀진 이름이란다. 꾀재에서 다시 오르막이 리프트카 승강장까지 이어진다. 여기를 지나면 평편하고 넓은길이 향로봉까지 편..

2013-06-02[국내산행]광주 무등산(산수동→장원봉→깨재→향로봉→바람재→늦재→원효사 약 10㎞)

오늘은 산행은 집에서부터 지산삼거리→장원봉→깨재→향로봉→바람재→늦재→원효사주차장에 이르는 약 8㎞의 산해을 하기로 한다. 산행들머리는 무등산 옛길 제3길하고 같으며 등산코스는 산책길처럼 아주 편한 등산로다. 산행들머리에 입구에 서있는 이정표이며, 바람재까지 6㎞이다. 여기서 무등산 옛길 3코스와 바람재로 가는 길로 길이 나눠진다. 장원봉에 서있는 이정목, 이정목이 바뀌면서 장원봉 표시가 사라졌다. 깨재에 있는 이정목 지산유원지로 내려가는 길광 충민사(전상의 장군 사당)으로 가는길로 나뉜다. 지산유원지로 내려가는 리프트 카를 탈 수 있는 리프트가 승강장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도 힘들어서. 바로 원효사쪽으로 하산한다. 길은 차가 다니는 차로가 있지만 차량 통제구간이므로 도보로 가야한다. 몇 년전에 아주 저질체..

2013-05-01[국내산행] 광주의의 진산 무등산(1,1872m)

광주의 아침은 무등산을 통해 시작된다. 시내 동쪽 무등산은 어둠을 재끼고 신선한 아침 햇발을 구석구석 쏟아준다. 저마다의 마당에, 창문에, 식탁에, 머리위에 빛나는 하루가 시작된다. 빛고을 광주의 하루를 열어주는 무등산의 모습은 어머니의 품처럼 안온한 형상으로 감싸주고 있다. 하지만 산정에 오르면 상황은 달라진다. 솟구치는 돌기둥이 돌올하게 지주가 되어 있고 병풍이 되어 있다. 8천7백만년전에 일어난 화산 폭발이 가져온 경이로운 모습은 풍경으로 만나는 이에게는 자연의 위대함에 감응하게 한다. 뜻으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하늘 기둥이라고 한다. 인간의 염원을 하늘에 전달하는 나무 솟대처럼 저 돌기둥이 인간의 존엄과 평화를 지켜온 광주의 정신이라고 말한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 단 한번도 외면하지 않은..

2013-04-26[국내산행]신의 돌기둥 무등산(1,187m)

“네모퉁이를 반듯하게 깎고 갈아 층층이 쌓아올린 품이 마치 석수장이가 먹줄을 튕겨 다듬어서 포개놓은 듯한 모양이다.” 1574년 무등산 입석대를 처음 본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고경명(1533~1592) 선생은 무등산 산행기인 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이어 “천지개벽의 창세기에 돌이 엉키어 우연히 이렇게도 괴상하게 만들어졌다고나 할까. 신공귀장(神工鬼匠)이 조화를 부려 속임수를 다한 것일까. 누가 구워냈으며, 누가 지어부어 만들었는지, 또 누가 갈고 누가 잘라냈단 말인가”라며 입석대의 형성 과정을 궁금해 하며 하였던 말이다. 증심사 주차장→문빈정사→증심교→당산나무 삼거리→약사사→새인봉 삼거리→서인봉→중머리재→용추삼거리→용추봉→중봉→군부대 삼거리→서석대→승천암→입석대→장불재→용추삼거리→증심사주차장(약 1..

2013-04-18[국내산행]광주의 진산 무등산 (1,187m)

『택리지』에 “광주의 무등산(無等山)은 산 위에 긴 바위가 가지처럼 뻗은 것이 수십 개나 공중에 배열되어 있어 훌륭한 홀 같고(입석대를 말함), 산세가 지극히 준엄하여 온 도를 위압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무등산은 광주광역시 북구와 화순군 이서면 및 담양군 남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 1187미터에 달한다. 무등산은 높이를 헤아릴 수 없고 견줄 만한 상대가 없어 등급을 매기고 싶어도 매길 수 없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무등산의 무등은 불교와 인연이 있는 말인데, 『반야심경』에서 부처가 절대평등의 깨달음, 곧 ‘무등등(無等等)’을 말한 대목에서 유래한 듯하다. 절대평등의 무등은 평등이란 말을 쓸모없게 하는 완전한 평등을 뜻한다. 증심사 주차장→증심교→약사사→새인봉삼거리→서인봉→중머리재→장..

2013-03-29[국내산행] 무등산자락 다님길

광주시 동구에 무등산 자락에 다님길이 있습니다. 이길은 건강산책로(3.3㎞), 문화산책로(4.6㎞), 가족산책로(2.2㎞), 치유의 숲길(1.4㎞), 실버산책로(1.5㎞)로 이루어진 산책길로 무등산 주변 등산로 중 가장 완만하며 지산유원지-깃대봉-학운초교-동적골 등 13㎞를 연결해 노약자 등 누구나 쉽게 다닐수 있는 녹색길입니다. 들머리는 광주 광역시 동구 지산동에서 시작됩니다. 지산동은 무등산에서 뻗어 내려온 향로봉을 중심으로 남서쪽의 깃대봉 능선과 북쪽의 장원봉 사이에 넓게 열린 아늑한 계곡부를 형성한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지산동을 옛날에는 편방, 단사동, 지막리등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지산동의 단사공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단사공원으로부터 조금 오르니 순환도로 터널 옆을 통과하게 됩니다. 삼..

2013-03-28[국내산행] 무등산(증심사-중머리재-용추폭포-동적골-운림동 약10km)

증심사 주차장→약사사→새인봉삼거리→서인봉→중머리재→동적골→보광사→운림동 오늘은 증심사 주차장을 출발해서 새인봉 삼거리 서인봉 중머리재를 지나서 용연동으로 2수원지 쪽으로 하산 하려 하였으나 길을 잘못 들어 동적골로 하산하였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등산로이다. 용추폭포는 무등산의 남쪽으로 흐르는 용추계곡은 장불재에서 흘러내린 물이 넓은 치마바위를 거쳐 용추폭포에서 절경을 이룬다. 용추폭포는 무등산의 용추계곡에 있는 천연폭포로, 높이는 약 9.8m이며 양쪽에 각종 활엽수가 무성하여 여름에는 무성한 녹음이, 겨울에는 활짝 핀 설화가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민족주의 사학자였던 호암(湖岩) 문일평(文一平, 1888~1936)이 「조선의 명폭(名瀑)」(『한국의 산수』)에서 남도의 대표적 폭포로 꼽은 곳이기도..

2013-03-27[국내산행] 무등산(약10km)

증심사 주차장→약사사→새인봉삼거리→서인봉→중머리재→용추삼거리→장불재→당산나무휴게소→증심사→증심사 주차장 오늘은 간단하게 무등산 인기코스로 다녀왔습니다. 무등산의 많은 전설중에 하나만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성계는 무학대사와 함께 전국의 산천신(山川神)들에게 나라를 세울 뜻을 전하고 도와줄 것을 빌고 다녔다. 하루는 무등산에 올라가 무등산신에게 허락을 얻으려 하였지만, 무등산신은 허락하지 않았다. 무정한 마음이 생겼지만 어쩔 수 없이 산에서 내려오다가 바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었다. 배도 고팠는데, 마침 어떤 사람이 보자기에 먹을 것을 잔뜩 싸 와 대접을 하는 것이었다. 이성계는 대견해하며 누구인지 물었다. 담양에 사는 왕 씨 성을 가진 사람으로, 집안이 곧 멸망할 것을 알고 걱정하다 말까지 잃었다고 한다. ..

2013-02-24[국내산행]광주 무등산

증심사 주차장→새인봉 삼거리→서인봉→중머리재→용추봉→중봉→서석대→장불재→규봉암-신선대입구→꼬막재→원효사 주차장 [증심사 주차장] 서인봉에서 바라본 풍광 왼쪽부터 중봉, 무등산 정상, 장불재 용추봉에서 광주 시가지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용추봉 이정표 중봉 무등산 중봉에서 바라본 무등산 정상과 입석대 무등산 정상 지금은 군사지역으로 오를 수 없답니다. 일년에 4번 개방한다고 함 서석대 현재 오를 수 있는 최고봉입니다. [규봉암] 창건연대가 확실하게 전하는 문헌이 없고 다만 신라시대에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순응대사가 중창했다고 전해지며 혹은 고려초 도선국사, 보조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이 절에 신라의 명필 김생(711∼791)이 쓴 규봉암의 현판이 전해 오다가 절취당했다고 기록이 전해오고 있다. 고려 말에 왜..

2013-02-17[국내산행] 무등산 옛2길

무등산 옛길중 2구간이 시작되는 버스정류장입니다.[금곡동 제철유적지]​광주광역시 기념물 21호무등산에서 철이 생산되었다는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 되어있다. 이곳은 임진왜란때 김덕령 장군이 무기를 만들었던 장소로 전해져 『주검동』이라고도 부른다. 1992년 발굴 조사결과 제철에 필요한 시설과 철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시설,가공하는 시설이 확인되었다. 또한 쇠로 만든 화살촉, 추 모약 철기, 못, 찌꺼기등이 발견되었다. 제철유적지를 지나자 갑자기 컨디션이 않좋아지고 힘들어 진다. 걷기조자 힘들다.[치마바위]임진왜란 당시 광주출신으로 이름을 떨친 김덕령 장군(1567-1596)의 누나가 치마로 감싸 안아 올렸다는 전설이 깃든 치마바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