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역은 경의선에 있는 기차역으로 운천역과 도라산역 사이에 있다. 2001년 9월 30일 영업을 시작하였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영송이 이곳에 진을 구축하고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격파하여 철군하자 의주에 파천하였던 선조대왕이 이곳에 이르러 강변 모래사장에서 제를 지내고 충신들의 명복을 빌며 통곡하였다하여 이 강을 임진강으로 불렀다. 새마을호, 통근열차가 운행되며 여객, 승차권발매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이 기관차는 한국전쟁 중 피폭·탈선된 후 반세기 넘게 비무장 지대에 방치되어 있었던 남북분단의 상징물이다. 2004년 아픈 역사의 증거물로 보존하기 위해 문화재로 등록된 수 포스코의 지원으로 녹슨 때를 벗겨 내고 역사교육자료로 활용하고자 현 위치로 옮겨 전시되고 있다. 당시 이 열차를 운전했던 기관사(한준기1927)의 증언에 따르면 군사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개성에서 평양으로 가던 도중 중공군의 개입으로 황해도 평산군 한포역에서 후진하여 장단역에 도착하였을 때 파괴되었다고 한다. 이 기관차에 있는 1,020여개의 총탄 자구과 휘어진 바퀴는 당시 참혹했던 상황을 말하고 있다.
자유의다리는 본래 경의선의 철교였으며, 길이 83m, 너비 4.5~7m, 높이 8m로 목조와 철조를 혼합하여 만들었으며, 1953년 휴전협정 이후에 한국군 포로 1만2773명이 자유를 찾아 귀한한 다리라해서 붙혀진 이름이다.
임진각은 북한땅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을 위해 1972년에 지상3층, 지하 1층으로 세워졌다. 1층과 2층에는 기념품 판매점이 있고, 3층에는 전시실, 그리고 옥상에는 전망대가 있다.
뒤에 보이는 임진강 철교
임진각
임진각 국민관광지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군사분계선에서 7㎞ 남쪽에 임진각이 세워진 1972년부터 2005년까지 ‘임진각 국민관광지’가 조성되었습니다. 이곳에는 임진각 본관과 평화누리공원, 평화의종, 망배단, 망향의 노래비, 한반도 모양의 통일연못과 자유의 다리, 미군참전비, 임진각지구 전적비, 버마 아웅산 순국외교 사절 위령탑 등이 있으며, 6.25전쟁의 비극이 그대로 남아 있는곳이다.
화석정은 이숙함의 정자에 대한 기록에 의하면 당나라 때 재상 이덕유(李德裕)의 별장인 평천장(平泉莊: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 함)의 기문(記文) 중에 보이는 "花石"을 따서 정자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이이(李珥)가 다시 중수하여 여가가 날 때마다 이곳을 찾았고 관직을 물러난 후에는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당시 그의 학문에 반한 중국의 칙사(勅使) 황홍헌(黃洪憲)이 이곳을 찾아와 시를 읊고 자연을 즐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왜구의 침공에 대비해 10만양병설을 주장한 이이의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은 선조가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 가던 중 한밤중에 강을 건널 때 이 정자를 태워 불을 밝혔다는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그후 80여 년간 빈터만 남아 있다가 1673년(현종 14)에 이이의 증손인 이후지(李厚址)·이후방(李厚坊)이 복원하였으나 1950년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었다.
하루밤을 보냈던 임진강 유스호스텔
연천 학곡리 고인돌은 굄돌과 막음돌을 세워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대형덮게 돌을 올려 만든 전형적인 탁자식이다. 현재 양쪽을 막는 막음돌은 사라지고 두 매의 굄돌만 남아있다. 지석묘에 사용된 석재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무암으로 덮개돌과 받침돌을 많이 손질한 상태이다. 덮개돌은 약간 각이 진 6각형에 가깝다.
연천 학곡리 적석종은 임진강변이 자연제방 위에 위치한 돌무지무덤으로 매장시설인 묘곽은 모두 4기가 확인하였다. 유적은 강쪽의 구릉 말단부에 일정한 크기의 강돌을 보강하여 적석부의 붕괴와 유수로 인한 침식을 막고 자연구릉에 기대어 돌을 쌓은 후 구릉 정상부를 삭토하여 무덤방을 위치시키고 다시 강돌을 싸아 마무리 하였다.
어수정은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물을 마신 곳이라고 하여 붙혀진 이름이다. 왕건은 궁예의 신하로 있을 때 개성과 철원을 왕래하면서 중간지점이었던 이곳에서 쉬어가며 물을 마셨다고 한다.
숭의전은 조선시대 고려 태조 이하 7왕(王: 혜종, 정종, 광종, 경종, 성종, 목종, 현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에 있는데 이것은 새 왕조를 연 다음 전 왕조 왕의 위패와 왕릉을 보존하는 것이 전통적인 예의였기 때문에 세워진 것이다. 처음 1397년(태조 6)에 고려 태조 왕건의 묘를 세웠으며, 1399년(정종 1)에 태조 포함 8왕을 제사지내고, 1452년(문종 2)에 숭의전이라 하고, 고려 왕족의 후손들로 하여금 이곳을 관리하게 하였다.
왕징면에서 오늘 도보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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