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옛길이 1구간에 이어 2구간이 오늘 개방된다는 소식을 듣고 답사에 나섰습니다. 옛길 1구간 입구가 집에서 가까운 관계로 걸어서 갑니다. 장원초교를 지나 조금 가면입구에 다다릅니다. “무등산 옛길 입구”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습니다. 수지사 입구이기도 하지요, 주택골목길을 지나서 오른쪽으로 가면 이정표가 보입니다. 원효사 쪽으로갑니다. 황소처럼 천천히 걷는다는 뜻의 황소걸음길이 나오고, 300m 마다 이정표가 있습니다. 조금 가파른 경사길 을 오르면 무진 고성 터가 있는. 잣고 개(성이 있는 고개)에 이릅니다.
광주시의 풍경을 내려다보기 좋은 곳입니다. 아스팔트 도로를 내려다보면서 동문자리, 나무다리, 청풍교, 청풍쉼터에 다다릅니다. 화암마을 지나기전 화장실 설치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윽고 이어지는 “숲속의” 길, 원효너덜겅에서 무등산 정상을 잠시 바라보고 곧바로 산장으로 향한다. 산장에 도착하니 벌써 개통행사는 끝났나 봅니다. 이제는 부터는 옛길 2구간입니다.
공원관리소 옆도로 왼쪽에 입구가 있습니다. 안내간판을 지나고 옛길과 제일기도원으로 갈림길에서 옛길 쪽으로 향합니다. 무아지경 길로 접어들고 김덕령 장군이 무기를 만들었다는 제철 유적지가 나온다, 여기서 300M쯤 올라가면 김덕령 장군이 썼다는 주검동(鑄劍洞)이라고 불리는 바위에 “만력계사 의병대장 김 충장공 주검동’새겨진 바위가 나온다.
군인들이샘으로 사용했다는 물통거리를 지나면 자갈길이다. 치마바위에서 부부가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막걸리 한잔을 얻어 마시고 다시 걸어간다. 도토리를 줍던 여자분이 내가 사진을 찍자 신고하려고 하냐면서 도토리를 다시 원위치 시키신다. 임도에서 서석대로 향한다. 급경사길이다. 가쁜숨을 몰아 쉬며 오르니 서적대 전망대가 나온다. 사진도 찍고 주변경관도 바라보며 숨을 고른 뒤 다시 오른다.
무등산 옛길 종점이라는 푯말에는 11.8km 전 구간을 완주를 축하한다는 글귀가 씌여있다. 서석대에서 군부대 때문에 가지 못하는 무등산 정상을 잠시 바라보고, 인증 사진을 찍은 뒤 장불재로 하산을 한다.승천암, 입석대, 장불재, 용추삼거리를 거쳐 중머리재에 이르니 해가 저문다.
광주 제2순환도로를 지나 광명아파트 맞은편에 있는 옛길 입구
황소걸음길 담양 사람들이 자식들 학자금을 위해 '자식같은 가축을 광주시장에 내다 팔러 가는길이다.
주인도 말이없고 따라가는 소도 뚜벅뚜벅 걷기만 하던길 이곳 부터 청암교까지이다.
무진고성을 오르기전 가파른 고개를 올라야 한다. 우측에 굿당이 있다.,
[무진 고성지]
광주 광역시 기념물 제14호이며 이 산성은 무등산의 지맥이 북쪽으로 뻗어내린 장원봉을 중심으로 잣고개의 생태봉과 제4수원
지 안쪽 계곡에 남북장축 약 1km 동서장축 500m의 장타원으로 축조된 포곡식 성이다. 광주 시내 풍경이 고스란이 내려다 보이
는 곳이며, 잣고개라고도 한다.
청암교
청풍쉼터 조선후기 풍자, 방랑의 시인 김삿갓이 쉬고 노닐던 곳이다. 김삿갓의 시비도 있다. 김삿갓도 이길을 걸었다.
무등이 높다하되 소나무 아래 있고, 적병강ㅇ 깊다 하되 모래 위에 흐른다', 시를 남겼다.
숲속의 길 : 숲이 울창한 길이다
원효봉 너덜 : 원효봉에서 흘러내린 돌무더기다. 잠시 쉬면서 무등산 정상을 조망하기 좋은 장소이다.
원효봉에서 바라보는 무등산의 정상을 조망해본다.
무등산 관리공원앞 잔듸 밭이다. 2구간 개방 행사는 끝났다.
여기는 무등산 관리센타 옆 도로이다. 여기서부터 옛길 2구간이 시작된다.
갈림길에서 옛길이라 표시된곳으로 가면 무아지경길이다.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만 있어 마음으로 걷는 길이란다. 숨소리도 죽여 가며 조용한 가운데 오감으로 느껴 보란다.
[금곡동 제철유적지]광주광역시 기념물 21호
무등산에서 철이 생산되었다는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 되어있다. 이곳은 임진왜란때 김덕령 장군이 무기를 만들었
던 장소로 전해져 『주검동』이라고도 부른다. 1992년 발굴 조사결과 제철에 필요한 시설과 철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시설,가
공하는 시설이 확인되었다. 또한 쇠로 만든 화살촉, 추 모약 철기, 못, 찌꺼기등이 발견되었다.
철의 원료는 가까운 계곡에 있는 사철이었고, 무등산의 풍부한 산림을 연료로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萬曆癸巳義兵大將金忠壯公鑄劍洞(만력계사의병장김충장공주검동) 김덕령장군 나이 23세 임진왜란
2년전 1590년 나무가 울창한주검동에 장정들이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쇠붙이 때리는 소리가 고요한
원효계곡에 울려 퍼졌다 한다.
임진왜란 당시 광주출신으로 이름을 떨친 김덕령 장군(1567-1596)의 누나가 치마로 감싸 안아 올렸다는 전설이 깃든 치마바위이다
무등산 정상 서쪽에 위치한 서석대는 수정 병풍처럼 둘러쳐저 상서로운 빛을 머금고 광주의 상징으로
우뚝 서있다. 이는 한반도 육지에서 가장 큰 주상절리대로서 자연유산으로 보존가치가 높 입석대와
함께 천연기념물(제465호)로 지정되어있다.
무등산 정상 지금은 군부대로 인하여 갈 수가 없다.
[승천암]
옛날에 이부근의 암자에수 수련중인 스님이 무언가에 쫒기던 산양을 숨겨준 일이 있었다. 어느날
스님의 꿈에 이무기가 나타나 산양을 잡아먹고 승천해야하는데 네가 훼방을 놓았다면 만약 종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너라도 잡아 먹어야 겠다고 했다. 얼마후 난데 없이 우렁찬 종소리가 들렸고 이무기는
스님을 풀어주고 승천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이다.
'네모퉁이를 반듯하게 깍고 갈아 층층히 쌓아올린 품이 마치 석수장이가 먹줄을 튕겨 다듬어서 포개놓은 듯한 모양이다' 1574년 무등산 입석대를 처음 본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고경명(1533-1592)선생은 무등산 산행기인 유서석록에 이렇게 묘사했다.
[무등산 주상절리대]
주상절리는 용암이 식을 때 수축되어 생기는 절리 중ㅇ에 단면의 형태가 오각형이나, 육강형의 기둥
모양인 것을 말한다. 무등산 주상절리는 약 7천만년 전에 형성된것으로 서석대, 입석대, 규봉이 대표
적이다. 입석대, 규봉은 풍화가 많이 진행되어 기둥 모양이지만 서석대는 풍화가 덜 진행되어 병풍
모양을 하고 있다. 정상을 중심으로 산비탈에 있는 너덜겅은 이러한 돌기둥이 무너져 쌓인 것이다,
서있는 바위나 너덜겅들은 암석의 생성과 풍화과정을 살펴 볼 수 있는 희귀한 자연유적이므로 서석대와
입석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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