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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그와 조금 늦은 오전 10시에 만나서 출발한다. 학교 터미널 좌측으로 조그만 길을 따라가면함평천 둑길로 접어든다.10월 말경이라 갈대가 키를 넘게 자랐다 학다리 또는 학교라는 지명이 궁금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조금은 슬픈 내용입니다.

전라남도 함평군 학교면 학교리라는 곳에 '학다리'라고 불리는 들판과 마을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배를매어 놓았던 닺배기(달배기) 와 조세를 받았다는 동창이라는 동명과 동창 뒤에 창더산이라는 산명이 있다.그리고 어선이 떠날 때 고기의 풍획을 빌기 위하여 제당에서 제사를 지냈던 '당코배기' 라 지명이 있는것으로 보아 이 들판이 바다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들판에는 조수의 간만으로 인하여 물이 빠지면 많은 개울에 널려 있는 조개류를 주워 먹기 위하여 많은 학들이 모여들었다. 물이 들면 망망 대해가 되어 어선의 왕래가 빈번하였다고 한다. ​아주 먼 옛날 이곳에 여씨 노인 부부가 살았는데 어부 생활로 근근이 생활을 유지하고 있던 중 슬하에 어린 딸 효순이 하나를 남기고 부인이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여씨 노인은 그날부터 어린 딸을 데리고 단니면서 조개도 줍고 고기도 잡고 하여 서로 의지하며 살아갔다. 그러는 동안 효순이는 자라서 밥도 짓고  빨래도 하고,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아버지를 도왔다. 

늙은 아버지의 잠자리를 보살피는 일이며, 아침저녁, 식사를 공대하는 일이며, 이웃에 사는 어른들의 일손도 도왔다. 그러던 중 효순이 갑자기 아프기 시작하였다. 몸의 열이 불덩이 같았고,  그만 자리에  눕고 말았다. ​여씨 노인은 걱정이 되어, 약을 구하러 집을 나섰다, 2~3일이 되어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동안 아팠던 효순의  몸은 회복되었다.  효순은 아버지가 집에 없는 것을 알아차리고 찾아 나섰다. ​

효순은 답답하여 아버지가 평소 자주 들리던 주막에 가서 아버지의 소식을 물으니  주모는 의아해 하면서 ​약을 구하러 나왔다고 하면서, 약주를 드시고 가셨다고 했다. 효순은 아버지가 가셨다는 개웅갓을 타고 내려갔다. 한참을 내려가니 아버니가 사용하시던 대바구니와 짚신 한 짝이 뻘밭에 뒹굴고 있었다. 효순은 대바구니와 짚신을 들고 아버지를 통곡하여 부르다가. 그만 까무러쳤다. 조수가 밀려들어오면서 효순이 조수에 밀려들 즈음,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효순을 구할 것을 명하였다. 그러자 수백 쌍의 학들이 날아와서 까무러친 효순을 끼고 언덕 위로 올려놓았다.

백발노인이 "학들아 너희들 이 살 곳은 여기서 십 리 떨어진 곳과, 이십 리 떨어진 곳에 있으니 그곳에 가서 서식하라"라고 하였다. 후세 사람들의 전하는 말에 의하면 학이 다리 모양으로 늘어서 효순을 구했다 하여 학다리라 하고 두 줄로 늘어 섰다 하여 쌍다리라고도 한다. 십 리 떨어진 곳에 함평 향교가 있고 이십 리 떨어진 곳에 무안 상동이 있으며 지금도 수백 쌍의 학이 서식하고 있다.​

 함평천 둑에는 억세가 키를 넘게 우거져 있다. 아직은 억세가 펴지는 않았다.

노랗게 물든 함평 들녁 조금있으면 추수철이 되겠지요

함평 엑스포 공원 근처의 둑길에 예쁜 꽃들이 피웠습니다


이제는 어두워서 사진도 못 찍을거 같습니다. 송홍초등학교까지 약 30키로를 걸었던것 같습니다.

여기서 그와 다시 만남을 약속하고 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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