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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gpx

강원도 철원은 궁예가 세웠던 태봉(泰封)의 수도였다. 고려 태조 때에 왕도인 송악의 동쪽에 있다하여, 동주(東州)라고 불렀다. 강원도에서 가장 먼저 기차가 다닌곳이 철원이다. 1914년 서울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京元線)이 놓이면서 철원은 서울과 금강산을 잇는 중요한 역이 되었다. 1936년 철원역에서 금강산 장안사(長安寺)를 지나 원산까지 닿는 전철이 개통되어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다. 그러나 해방과 함께 철원은 오늘날 적막한 구철원이 되고 말았다. 금강산으로 내달리던 경원선도 끊기고 옛도읍지는 아예 비무장지대로 잠겨버렸다.

신철원 터미널은 갈말읍에 있기 때문에 갈말터미널이라고도 불린다. 건물1층에 대합실과 매표소만 있고, 승강장은 따로 없다.

철의 삼각 전적관은 고석정 국민관광지 내에 있는 안보교육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옥외에는 각종 항공기등 군사 장비가 전시되어있다. 교육관에는 철원관광 홍보 동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철원 전적관앞 광장에 있는 임꺽정 동상.

철원 전적관앞 광장

고석정(孤石亭)은 한탄강 중류에 위치한 철원팔경의 하나로서 강을 사이에 두고 강변 양쪽은 기암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옥처럼 맑은물이 흐르고 있는 명승 고적지다. 이 고석정은 진평왕과 고려 충숙왕이 정자에서 놀던 유서깊은곳으로 땅속 깊이 굽이쳐 흐르는 한탄강 유역 가운데서 10m나 되는 바위와 그 위의 세칸 남짓한 자연굴이 자못 웅장하다.

조선시대 의적으로 불리던 임꺽정의 활동·은거지로 알려졌다. 조선 명종때 임거정이라는 문무를 겸비한 천인이 과거의 길이 막힌 것을 탄식, 동조하는 무리를 모아 의적단을 조직하여, 고석정 건너편에 석서을 쌓고 함경도에서 상납되는 조공을 탈취하여 서민에게 분배해준 의적의 근거지로도 알려졌다. 조저에서는 임꺽정을 생포하려고 별별 수단을 다 썻지만, 그때마다 꺽지로 변신하여 고석정 및 한탄강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여 훗날 사람들은 임꺽정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탄강은 강원도 평강의 추가령곡에서 발원하여 철우너과 연천을 거쳐 전곡에서 임진강과 합류하는 강이다. 민족분단의 상징인 휴전선을 가로질러 흐른다.

한여울길은 강원도 철원군에서 조성한 길로 승일공원에서 승일교를 건너 고석정, 마당바위, 태봉대교, 직탕폭포까지 이어진다. 현무암 계곡으로 이루어진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철원의 태봉대교

철원에서 하루밤을 묵었던 호수에 추억펜션

학저수지는 철원군 동송읍 오덕리에 위치한 저수지로 1921년에 일제가 만들었다. 학저수지에서 바라보는 노을이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출사를 오는 장소이기도 하다.

도피안사(到彼岸寺)는 통일신라 경문왕 5년에 도선국사가 높이 91의 철조비로사나불좌상을 제조 철원읍 율리리에 소재한 안양사에 봉안하기위하여 여러 승려들과 같이 가다가 잠시 쉬고 있을 때 이 불상이 갑자기 없어져 그 부근 일대를 찾다가 현위치에 그 불상이 안좌한 자세로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이 불상을 모셨다 한다. 당시 철조불상이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에 이르렀다 하여 절이름을 도피안사로 명명하였으며 절내에는 도선국사가 제조한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사나 불좌상과 보물223호로 지정된 높이 4.1m의 화강암 재료로 된 3층 석탑이 보존되어있다. 전에는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으로 출입이 제한되었으나,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이 불좌상은 신체와 대좌가 모두 철로 된 신라망릐 보기드면 불상이다. 뒷면에 새겨진 139자의 명문 가운데 함통 6년 기유정월의 문구가 있어서이 불상의 제작시기는 신라 경문왕 5년임을 알수 잇다.

도피안사 3층 석탑은 불상의 대좌처럼 꾸며진 8각 이중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올렸다. 이와같은 예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데 이는 법당 안의 철불과 마찬가지로 9세기경에 새롭게 일어나는 개성적인 지방 호족문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노동당사 1946년 초 북한 땅이었을 때 철원군 조선노동당에서 시공하여 그해 말에 완공한 러시아식 건물이다.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북한의 노동당사로 이용되었다. 6.25전쟁때 큰 피해를 입어 건물 전체가 검게 그을리고 포탄과 총탄자국이 남아있다.

수도국지 옛철원읍내에서 약간 떨어진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수도국은 일제강점기에 철원읍내 주민들에게 마실 물을 공급하기위하여 1936년에 만들어져있다. 일제식민통치 기구에 의해 간행된 철원읍지에 의하면 1937년 당시 급수세대는 500 여호, 급수인구 2,500명이며 1일 급수량은 1,500에 달하였으며 강원도내에서 유일하게 상수도 시설을 자랑했던곳으로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저수조와 정수장 관리소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고대산은 금강산 가는길목, 경원선 철도가 끊겨 있는 철도중 단절된 연천군 신탄리역에 인접한 고대산(832.1m)은 천혜의 자연경관을 간직하고 있으며 생태계가 잘 보존된곳으로 등산으로 북녘땅을 바라볼 수 있는 국내 유일한 곳으로 등산여행에는 좋은곳이다. 고대산의 유래는 큰고래라고 부르고 있으나, 이것은 신탄 지명에서 연류된 것으로 방고래를 이르는 것으로 고대산은 골이 깊고 높아 고대산이라고도 한다.

신탄리역은 경원선의 남한측 최북단 종착역으로 대광리역 다음에 위치한다. 1913710일 영업을 시작하였다. 예전부터 이 마을은 고대산의 풍부한 임산자원을 숯으로 가공하여 생계를 유지하였으며, ‘새숯막이라 불렀다. ‘여지도서에도 薪炭이라 적혀있으며 철도가 부설된 후에는 숯가공이 더욱 번창했다. 새숯막이라는 지명이 대광리와 철원 사이에 주막거리가 새로 생겼다 하여새숯막으로도 불리기도 했는데.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을 숯으로 잘못 표기하였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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