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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갈림길→귀래봉→도솔봉→419봉→서호마을

​남도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산으로 공룡의 등줄기처럼 울퉁불퉁한 암봉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능선은

단조로운 산타기와는 달리 계속해서 정상으로만 이어지는 등반으로 멀리 해안 경관을 보는 즐거움이

함께해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산이다.

​산행은 약 6km, 3시간에 불과하지만 암릉, 억새, 다도해 조망 등 온갖 재미를 두루 볼 수 있다. 특히

바위능선과 함께 억새풀과 상록수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는것이 이 산의 특징이다. 또한 산 전체가

규암으로 되어 있다. 산을 오르는 도중 돌더미가 흘러내리는 너덜지대를 통과하기 때문에 산행이 쉽지

만은 않으며 곳곳에 단절된 바위 암벽이 있어 혼자 등반하기보다는 여럿이 오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 향토사학자에 의하면 이 산은 옛날의 송양현에 속해 있었는데 지금은 해남군 현산·북평·송지 등 3개

면에 접하고 해남읍으로부터 약 28㎞ 떨어져 있다. 이처럼 3개 면에 위치하면서 두륜산과 대둔산의 맥을

이어 현산이 머리라면 북평은 등, 송지는 가슴에 해당하는 형상이다.

​또 사구·통호·송호 등의 산맥을 지맥으로 이루면서 한반도 최남단 땅끝 사자봉에 멈춘 듯하지만 바다로

맥을 끌고 나가 멀리 제주도 한라산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산이다. 이렇듯 수려한 산세가 유서깊은 천년

고찰 미황사를 있게 한 것이다. 또 옛날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완도의 숙승봉과 북일 좌일산에서 서로 주고

받던 곳으로 현재 잔허가 남아 있으며 극심한 가뭄이 오래 계속되면 산봉우리에서 기우제를 지내 비를

내리게 했다 한다. 이 고찰은 불교의 해로유입설(海路流入說)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경내 부도전의 부도

조각이 특히 아름답고 대웅전 뒤쪽으로 산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꼭대기 고개 동쪽에 있는 천길이나 되는 벽 아래 미타혈이라는 구멍이 있는데 대패로 민 듯 칼로 깎은

듯한 것이 두세 사람은 들어가 앉을 만하다. 앞으로는 층대가 있어 창망한 바다와 산들이 서로 가까이 있는

듯 느껴진다. 정상은 기암괴석이 들쑥날쑥 장식하고 있어 거대한 수석을 세워놓은 듯 수려하다

미황사는 해남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 서쪽, 한반도의 가장 남쪽 끝에 자리한 사찰이다.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의조 화상이 창건했다. 고려시대에는 남송의 달관, 군자, 등이 미황사에 내왕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전기 까지도 사세를 유지해 온것으로 보인다.

​1754년(영조30년)에 기록된 <미황사법당중수상량문>에 보면 미황사는 임진왜란 이후 세차례 중건이 있었

다고 한다. 첫번째는 1597년(선조30년) 정유재란 때 건물의 일부가 소실되어 다음 해부터 공사를 시작해서

1601년에 마무리 되었고 이때의 불사는 민선스님이 담당했다. 그 뒤 1658년(효종9년)에서 1660년(현종1년)

까지 두 번째 중창이 이루어졌으며 이때는 성간, 수신 스님이 담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는 1751년(영조27년)에 덕수 스님에 의해 시작되어 상량문이 씌어진 1754년에 마무리

되었다. 이에 필요한 목재를 1751년에는 보길도에서 실어 왔으며 대둔사와 인근 마을에서 공사를 도왔다고

한다.​

 

해남군 송지면이 보이고 바로 아래 미황사가 보인다.  

 바로 앞에 보이는 큰 산이 완도 상황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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