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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재입망치수정봉움막구룡폭포육모정

산행 들머리인 해발477m의 여원재는 그 이름의 유래가 깊다. 교통이 불편하던 옛날, 남원과 운봉, 함양등을 오가는 길손이라면 반드시 거쳐야만 했던 이 고개의 유래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던 때 이곳 운봉현까지 왜구의 침락이 잦았다 고개마루 주변 주막집을 들락거리던 왜구 무리들은 주모에게 손찌검을 했다. 이에 주모는 날이 시퍼렇게 선 칼로 왜구의 손을 탄 왼쪽 가슴을 잘라내고 자결하였다. 한편 왜구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운보에 당도한 이성계는 꿈자리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노파로부터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날짜와 전략을 계시 받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성계는 꿈에 나타난 이 노파가 왜구의 손찌검으로부터 몸을 지키고 자결한 주모의 원신이라고 믿고, 고개마루 암벽에 여상을 암각한 다음 주목의 넑을 위로하기 위한 사당을 지어 여원이라고 불렀다, 현지 주민들은 여원치를 연재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필시 여원의 이름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짐작된다.

 

여원재에서 시작하여 입망치,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산행로는 양탄자 같은 낙엽과 송림 숲으로 우거진 황금의 실크로드와 같이 편한 길이다.

운봉읍이 보인다

입망치를 지나고

수정봉은 망치 학이 날개를 피고 날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전설에 의햐면 수정봉의 노치마을에 옛날 민씨(閔氏)라는 거지가 살았는데 그는 짚신을 삼아 팔았다. 어느 추운 겨울날 민씨가 죽어 눈 덮인 산을 헤매어 시체를 매장하려는데 신기하게도 관이 앞맞게 들어갈 만큼 눈이 녹아 있는 곳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곳에 장사를 지냈는데 바로 그 자리가 용은 용인데 주인이 없다는 활룡무주(黃龍無主)의 명당이었다. 이묘를 쓴 뒤 그 후손이 번창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묘에 호화롭게 석물을 세우고 보수를 한 뒤로는 자손들이 뜻밖에도 나쁜 일을 당해서 다시 석물들을 없앴더니 화가 없어졌다고 한다. 돌이 무거워 학이 날지 못햇다는 것이다.


고인돌처럼 생긴 바위

지리산둘레길 일부를 걷는다.


비폭동


구룡계곡은 지리산 국립공원 북부지소가 있는 주천면 호경리부터 구룡폭포가 있는 주천면 덕치리까지 펼쳐지는 심산유곡이다. 수령한 산세와 깍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으로 이어지는 이 계곡은 길이가 약3이다. 정상에 오르면 구곡경의 구룡폭포가 있다. 남원 8경중 제1경인 구룡폭포 아래에는 용소라 불리는 소가 형성되어 있는데, 옛날에 이곳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지리산 관광도로가 개설되어 구룡계곡의 스카이웨이는 한층 편리하게 경치를 구경하게 해준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 정령치간 도로는 뱀사골(반선)과 노고단으로 이어져 지리산의 진수를 맛보게 한다.

육모정(六茅亭)은 지리산 국립공원 구룡탐방지원센터 근처의 구룡계곡 옆에 있는 정자로 육각정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육모정(六茅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1572(선조5) 남원도호부 관내에서 만들어져 현재까지 유지·계승되고 있는 원동향약(源洞鄕約),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46호 관련 유적으로 향약계원들이 모임을 하던 곳이다. 1961년 수재 때 유실되었다가, 1997년 복원 되었다. 옛 육모정은 구룡계곡 옆 큰 바위 옆 큰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곳에서 약간 떨어진 언덕 쭉에 복원되어 있다

 

춘향묘는춘향전의 주인공 성춘향의 무덤으로, 지리산국립공원 구룡탐방지원센터 근처에 있다. 1962년 현 위치에서 성옥녀지묘라 새겨진 지석(誌石)이 발경되어 묘역을 단장하였다고 전해지며, 1995년 정비작업을 하여 지금의 규모가 되었다. 춘향이 실존 인물이 아닌 만큼 진짜 무덤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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