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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 1일차 2014-05-03 서해안08-1구간.gpx

도보 2일차 2014-05-04 서해안08-2구간.gpx

도보 3일차 2014-05-05 서해안08-3구간.gpx

도보 4일차 2014-05-06 서해안08-4구간.gpx

서면 파출소에서부터 걷기가 시작됩니다.

공암 남촌길 해변이 아름답습니다.

서도초등학교

춘장대 해수욕장입니다. 춘장대 지명유래는 춘장대해수욕장은 1980년대 초 동백정 해수욕장에 서천화력발전처가 설립되자 그 대안으로 새롭게 부각된 곳으로 대부분이 사유지였는데 그중 대토지 소유자 민완기씨가 이곳에 서너 개의 방갈로를 만들고 자신의 호()인 춘장(春長)을 따서 춘장대라고 명명한 것이 유래되어 춘장대해수욕장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카시아 숲이 길게 우거진 모습을 본 따 '춘장대(椿長臺)'라고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해수욕장과 바다낚시로 유명한, 춘장대 해수욕장

춘장대해수욕장은 1.5도의 완만한 경사와 맑고 잔잔한 수면이 특징이며, 울창한 해송과 아카시아 숲이 넓게 분포되어있어 야영과 휴식을 취하기에 매우 좋다. 해수욕장 중앙에는 광장이 있어 만남의 장소 등 문화활동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해수욕 외에도 썰물 때면 주변의 쌍도 등 걸어서 갈 수 있는 섬이 있고, 갯벌에서는 맛살·조개·넙치 등을 잡을 수 있다. 또한 서해안 일대에서는 보기 드물게 자연 경관이 수려하여 인근의 부사방조제와 서천해양박물관, 홍원항, 수련원, 마량리 동백나무숲과 어울려 가족단위 또는 기업체, 단체 등의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한우타운에 왠 화투일까요?

부사교입니다. 부사교는 부사방조제로 진입하는 다리입니다.

부사방조제에서 만난 풍경과 시설물이었습니다.

소황리 해변의 풍경입니다.

보이는 섬이 직언도와 황죽도 일까요?

우리나라 서해안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를 이용하여 갯벌에 울타리를 치고 고기를 잡는 전통어로방식이 발달하였는데, 주로 대나무를 사용하였지만 돌이 많은 지역에선 돌을 촘촘히 쌓았는데. 이른 독살이라고 한다.

무창포라는 명칭은 조선시대에 세미를 저장하는 창고가 있는 갯가의 포구라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무창(武昌)의 서쪽에 있는 포구가 무창포이다.

무창포 해수욕장

무창포해수욕장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개발되어 서해안에서 최초로 개장한 해수욕장으로 해수욕과 갯벌 체험이 가능하여 이를 즐기려는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보령8경 중 제2경에 해당하는 무창포 바닷길을 품고 있으며, 대천해수욕장 및 죽도 관광지와 더불어 보령시의 3대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무창포의 신비의 바닷길은 무창포 입구에서 50m 떨어진 언덕 위에 위치한 무창포 전망대에 오르면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장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 음력 보름과 그믐에 열리는 바닷길에 맞춰 7월 중순경에 개최되며 연예인들의 축하공연, 불꽃놀이 등 다양한 볼거리와 팔씨름 대회 및 민속놀이, 조개잡이 대회 등을 시작으로' 해산물(조개 등) 무게 맞추기', '신비의바닷길' '횃불대행진', '조개잡기 대회' 등 다양한 체험거리가 제공된다. 그리고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 전국댄스경연대회 및 노래자랑도 축제의 또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남포방조제에 있는 요트경기장입니다.

죽도의 유래비

남포 간척지를 만들기 위해 만든 방조제로 길이가 3.7km에 이르며, 드라이브코스로 제격이다. 방조제 중간 지점에 죽도라는 섬이 위치하고 있다. 방조제와 연결 되어 있어 들어갈 수 있으며, 죽도 주변은 바다낚시로 유명하다. 방조제 중간에는 팔각정을 세워 휴식공간을 마련하였는데, 이곳에서 성주산, 옥마산, 남포평야, 죽도 등이 보인다.

이곳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대천해수욕장입니다.

대천2교에 있는 잠수교?? 입니다.


토정묘가 상당히 높은곳에 위취한다. 토정묘에서 내려다본 풍경입니다.

신보령화력발전소가 공사중입니다. 상당히 넓을 지역을 차지하더군요

▲ 바닷가 모래사장이었던 갈매못은 병인박해 때에 군문효수를 당했던 다블뤼 안 안토니오 주교, 위앵 민 마르티노 신부, 오메크로 오 베드로 신부와 황석두 루가 회장, 그리고 장주기 요셉 회장과 그밖의 수많은 무명 순교자의 피로 물든(1866330일 성금요일) 처형장이었다.

대원군이 이 자리를 처형장으로 택한 것은 명성황후의 국혼이 예정된 시기로서 수도에서 200리 이상 떨어진 곳에서 형을 집행해야 탈이 없으리라는 무당의 예언도 있었고, 러시아와 프랑스 함대가 침략을 시도한 서해의 외연도가 아스라히 바라다보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 인근의 오천성은 좌수영 및 우수영과 함께 영향력있었던 충청수영이 있던 곳으로서 다른 지방과 다르게 전국의 죄인들이 여기까지 와서 처형당하기도 했던 역사가 있지 않았나하는 의견도 있다. 치명터임이 확인된 1927년부터 이 곳이 성지로 관리되기 시작했고, 1975년에 순교비가, 1999년 경당이 완공되어 순례자들을 맞고 있다.

전래적으로 무서운 곳으로 알려져 마을 사람들이 누구도 이 근처에 가지 말도록 해왔던 이 곳은 길도 없어 인근 오천성에서 배를 타고 오던 곳이었으나 성지로 개발되어 지금은 경당 앞 천수만변 도로를 통해 수많은 순례 단체가 줄을 이어 방문하고 있다. 단체 순례자들은 언제나 편리한 시간에 미사봉헌을 예약할 수 있다.

오천은 예전부터 보령 북부권의 삶과 생활의 중심지였다. 보령 북부권의 모든 길들은 오천과 통한다는 말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실제로 주포,주교,청소 등 오천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만 세 갈래나 된다. 예전의 영화는 많이 퇴색되었지만, 오천항은 천수만 일대의 주요 어항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충청 수영성 내에 있는 영보정

충청 수영성에서 본 오천항입니다.

보령방조제를 지나고 있습니다.

간월암(看月庵)은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위치한 암자이다. 조선 초 무학대사가 창건하였으며, 만공대사가 중건하였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간조시에는 뭍(간월도)과 연결되고 만조시는 섬이 되는 지형에 세워져 있다.

1530(중종 25) 찬술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간월도만 언급되어 있고 간월암은 언급되어 있지 않아 조선 후기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말엽에 폐사되었는데 1914년 승려 만공(滿空)이 다시 창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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