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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5[일반여행] 안동 도산서원

category 일반여행 2012. 10. 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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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陶山書院)은 조선 선조(宣祖) 7(1574)에 건립된 것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위패를 모시고 후손과 제자들이 향사하며 후학을 양성해 온 곳이다. 영지산(靈芝山)을 뒤로하고 동취병(東翠屛), 서취병(西翠屛)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골짜기 안에 안동호를 바라보며 자리잡고 있다. 선조가 이름을 내렸고, 편액은 동왕 8(1575)에 석봉(石峯) 한호(韓濩)가 썼다.

영남유림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대원군 서원철폐 당시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전국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1969년과 1970년에 정부의 고적보전 정책에 따라 성역화의 대상으로 지정되어 건물을 보수하고, 유물 전시관인 옥진각을 신축하여 퇴계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열정(迾井)은 도산서당의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로 역경(易經)의 정괘(井卦) ‘정렬한천식’(井洌寒泉食)‘에서 의미를 취하였다. 우물은 마을이 떠나도 옮겨가지도 못하고, 퍼내어도 줄지않는다. 이처럼 무궁한 지식의 샘물을 두레박으로 한 하나 퍼내어 마시듯 자신의 부단한 노력으로 심심을 수양해야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도산서원 전교당(典敎堂)은 퇴계 이황을 추모하는 도산서원의 강당에 해당된다. 전교당은 조선 선조7(1574)에 건립되었다. 건물의 구조는 매우 간소하며 대청과 온돌방으로 구성되었다. 정면4, 측면2칸의 팔작집이며, 강당인 대청과 거실인 온돌방으로 구성되었다. 선조가 이름을 내린 현판의 글씨는 명필인 석봉 한호가 쓴 글씨라고 전해진다.

 

시사단은 조선시대 지방별과를 보였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정조대왕께서 퇴계 이황선생의 유덕을 추모하여 그 16(1792)에 관원 이만수를 도산서원에 보내어 임의 제문으로 제사를 지내게 하고 그 다음날 이곳 송림에서 어제(御題)로 과거를 보였는데, 응시자가 7천명에 달햇다고 한다. 비문은 당시 영의정인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이 지었다. 안동댐 수몰로 송림은 없어지고 단만이 현 위치에서 지상 100m높이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과거(科擧)의 자리를 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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