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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군과 전북 고창군과 경계를 이루는 명산이며 독립가였던 춘원 임종국은 1956∼1989년까지

34년간 심혈을 기울여 축령산 일대에 삼나무 62㏊, 편백 143㏊, 낙엽송·기타 55㏊를 조림하여 벌거벗

었던 산록을 늘 푸르게 한 전국 최대 조림성공지이다.

현재는 수고 20여m, 경급 40여㎝의 임목이 빽빽히 들어서 있어 국민의 보건휴양 및 정서 함양을 위한

야외휴양공간을 제공함과 동시에 쾌적하고 편리한 자연교육장으로 역할을 다하고 있다. 특히 침엽수림

에서 방출되는 피톤치드는 심신이 맑아져 안정을 가져오며, 인체의 심폐기능 강화로 기관지천식, 폐결핵

 치료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편백나무 숲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장성의 축령산 휴양림을 내려오다 보면 한 마을에 이르게 된다

축령산 정상에서 정 북쪽에 자리한 금곡마을, 영화 촬영지로 주목받아 명소가 된 마을이다. 가구수

50호도 안되는 마을이지만 이 일대의 심미는 규모 따위로 풀이 할 수 없다..

마을을 두른 산세, 그 속에 안긴 마을이 일광욕을 즐기듯 누워 있다. 자연과 마을이 하나의 공간처럼

조화를 이뤗다. 많은 영화 관계자의 눈길을 사로 잡은 것도​ 어쪄면 당연하다 장성호의  또 다른 모습

곳곳에 그 윽한 예술 문화의 체취를 이 곳에서 만난다.​

마을 초입에서 천천히 둘러보며 안쪽으로 들어가면 다랑논이 있는 농촌에서 봉우리가 눈에 띄는

산촌으로 분위기가 바뀐다. 산기슭 경사면이 마을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되고 마을 외곽의 길가는

수림이 우거져 있다. 산길은 마을과 자연스레 이어져 마실길 처럼 편하다.​

 

황룡면 필암리에 있는 서원으로, 호남지방의 유종으로 추앙받는 하서 김인후와 그의 제자이자 사위

인 고암 양자징을 배양하고 있다. 김인후 선생이 죽은 후 30년이 지난 선조23년(1590년) 호남의 유림

들은 그의 도학을 기리기 위해 그가 살고 공부하며 제자를 가르쳤던 장성읍 기산리에 사우를 짓고

그의 위폐를 모셨다.

이것이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자 인조2년(1624)에 김인후 선생이 태어난 활룡면 증산동에 다시

사우를 지었다. 현종 3년(1662)에는 유생들의 요청에 따라 '필암'이라는 액호를 하사받고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당시 서원의 입지 조건이 수해를 입을 우려가 있었으므로 현종13년(1672)에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고, 1785년에 양자징도 함께ㅔ 모셔졋다. 그 후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도 다치

지않은 채 오늘에 이른다

그리 높지 낳은 산이 뒤를 감싼 가운데 평지에 자리잡은 필암서원은 선현에 대한 제사의 공간과 교육

및 학문 수련의 공간, 그 밖에 장서 공간 등 조선 시대 서원의 기본 구조를 모두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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