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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4 서해안따라23-1(고천암방조체-땅끝).gpx

2011-05-14 고천암방조제~가좌리~관동리~좌일마을~백포리~송지삼거리 약22km

고천암호는 철새 도래지로 유명하며, 12월 중순부터, 2월 말까지 가창오리 떼가 몰려 장관을 이룬다. 영화 <서편제>,<살인의 추억>을 촬영한 곳이 바로 고천암호 갈대 밭이다. 고천암 갈대밭은 고천암호를 따라 14km정도의 둘레를 갈대들이 광활하게 서식하고 있다. 사진은 해남 배수갑문.

관두산은 풍혈이 있다, 이른바 더운 바람이 땅속에서 솔솔 나오는 구멍이다. 조선시대에는 멀리 서남해의 왜구들이 넘다드는 것을 조망하여 서울쪽으로 봉화를 중계하던 봉수대가 있었던곳이다. 산은 그리 높지 않으나 이웃 진도와 서남해 바다를 연결하는 지리적 이점 때문인지 이곳에 봉화대가 세워진듯하다. 세종실록지리지》《동국여지지등에 남으로는 갈두산, 서로는 진도 첨찰산에 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완보기념 자축연도 열어보고,

2011-05-14 서해안따라23-2(고천암방조체-땅끝).gpx

2011-05-15 송지삼거리~송지면~송호리~땅끝산책로 ~땅끝탑~땅끝 약14km

송호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 2, 너비 200m, 평균수온은 20로 해남읍에서 남쪽으로 41떨어진곳에 있다.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하며 물결이 잔잔해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 백사장 뒤편 제방을 따라 100~200년생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제방 아래 백사장은 간조때면 넓은 모래운동장으로 변한다

이곳은 한반도 최남단으로 땅끝을 알리는 땅끝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뱃머리 모양의 전망대가 땅끝의 새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서해안길 도보를 완보후 해남 대흥사로 차편으로 이동 하였습니다. 두류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대흥사는 창건된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설이 있지만 신라 진흥왕 5(544)에 아도화상이 창건한 기록을 따르고 있다. 경내에 걸려 있는 현판 글시는 조선시대의 명필가들이 직접 쓴 것으로 조선시대의 서예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데, 대웅보전의 현판 글씨는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의 일화로 유명하다. 제주도로 귀양가던 추사가 대흥사에 들러 원교가 쓴 글씨체가 마음에 들지 않느다며 내리가 하였는데 귀양에서 돌아오며 자신이 쓴 무량수전현판은 내리게 하고. 원교의 글씨를 다시 걸게 하였다고 한다. 제주도 귀향살이에서 추사는 겸손의 미덕을 쌓았던 것이다.

이 건물은 조선 현종8(1667)심수대사가 증건하였다 하나 그 후에도 증수가 있었던 듯하다. 현판은 조선 후기의 명필인 원교 이광사(1705~1777)선생의 글씨이다. 건물 안에는 목조삼존불을 봉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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